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의 시작, 불필요한 불행 만들지 않기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을 사시는 것이 불필요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자, 남편과 사별 후 오히려 불행을 호소

안녕하세요. 한약 달이는 남자, 한달남 한의학 박사, 한방내과 전문의 배한호입니다. 오늘은 불행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볼까 합니다. 이 불행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제가 환자분들과 다양한 상담을 하다 보면 불행하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일찍 결혼하셨는데 남편이 폭력적이라 늘 매를 맞아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는 70대 후반 여성 환자분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환자분에게 지금도 남편분이 때리시는지 여쭤보니 그 남편 분은 20여 년 전에 이미 돌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여쭤봤죠. ‘그럼 이제는 괜찮으시겠네요?’ 했더니 한동안은 좋았답니다. 한동안은 속도 시원하고 좋았는데 갈수록 오히려 자꾸 남편 생각도 나고 그립기도 했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 팔자가 왜 이런가?’ 하고 자꾸 불행해진답니다. 나한테 잘해주지는 못하고 평생 구박과 야단과 주먹질만 하더니 애들 다 키워 놓고 이제 먹고살 만하니, 일찍 가버려서 혼자가 되신 거죠.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예전이 더 그립기도 하답니다.

또 주변에서 부부가 함께 놀러 다니는 것을 보니 보기에도 좋고 나는 남편과 함께 놀러 다니지 못하니 부럽기도 했답니다. 아무래도 집에 혼자 온종일 있게 되는 시간이 많으니 적적하고 외롭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남편 분에게 안 맞으시니 좋은 거 아니시냐고 물어보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맞더라도 같이 있는 게 더 나을 뻔했답니다.

또 그러시다가 조금 후에 아니라고 부정하셨습니다. 일찍 죽은 게 사실 더 잘 된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 나이에 맞고 살 수는 없으니 그놈의 영감탱이 잘 갔죠.’라고 하십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남편이 계셔도 불행하고 안 계셔도 불행하면 그 불행은 남편이 준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일까요?

재산 분할 후 상속 분쟁이 일어난 환자 사례자

또 다른 환자분입니다.

이번에는 60대 초반의 여성 환자분입니다. 송사에 휘말리셔서 머리가 너무 아프고 자기 삶이 너무 불행하다고 상담을 오신 환자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누가 주변에서 소송을 걸었나 봅니다.’ 그랬더니 ‘아니요. 제가 걸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소송을 걸었어요?’ 이렇게 여쭤봤더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만 넷이라 부친의 재산을 딸 네 명이 나누어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충돌이 있어서 소송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쭤봤죠. ‘재산을 혼자서 너무 적게 받으셨나 봅니다.’ 그랬더니 ‘네. 터무니없이 상속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민법상 1/N 받게 되어있는 것 아니신가요? 4분이 25%씩 받은 거 아닌가요?’ 이렇게 여쭤봤죠.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재산을 똑같이 1/N 받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재산은 똑같이 나누었는데, 문제는 돌아가시기 전에 큰언니에게 아버지가 사시던 본가 집 명의를 넘겨주셨답니다.

장녀인 큰언니가 형부랑 사별하고 조카들도 다 크고 해서 어차피 혼자 사셨는데 그 아버지도 혼자고 하니 아버지가 계신 친정에 내려온 것이죠. 큰언니가 연로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친정집을 큰언니 앞으로 명의를 옮겼답니다. 그래서 그 친정집을 뺀 나머지 땅만 상속이 된 것입니다.

이 환자분 입장에서는 그 집도 다시 네 명이 1/N 나누어야지, 왜 큰언니만 집을 갖느냐고 생각하고 소송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집이 되게 비싸고 땅은 얼마 안 되는가 싶어서 땅은 얼마 정도 받았는지 여쭤보니 땅도 한 사람당 한 몇 십억씩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이분 생각에는 사실 큰언니는 집을 받았으니, 나머지 땅을 자매들끼리 받았어야 했는데 큰언니는 양심도 없이 땅을 똑같이 다 받은 것이죠. 화도 나고 원통해서 큰언니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답니다.

그래서 제가 여쭤봤죠. ‘그러면 큰언니한테 소송을 하셨으니까 다른 두 여형제분도 큰언니에게 소송을 같이하신 건가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니요, 저만 해요.’

그래서 제가 여쭤봤죠. ‘다른 자매 두 분은 왜 안 하시는 거죠?’ 그랬더니 이분 말씀이 ‘모르죠. 그것들은 원래 큰언니를 엄마처럼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여쭤봤습니다. ‘친정 모친이 일찍 돌아가셨나 봐요?’

‘네, 그래서 큰언니가 다른 동생들에게 일종의 엄마 역할을 한 것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여쭤봤죠. ‘아버님 생전에 친정집을 큰언니에게 넘긴다는 것을 아버님이 다른 세 딸에게 말씀을 안 하시고 하신 건가요?’ 그랬더니 또 그것도 아니랍니다. 큰언니가 아버님을 모시게 될 때 아버님이 언니가 나를 부양하니까 이 집은 네 언니를 줄 거라고 이미 그때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여쭤봤죠. ‘그럼 그때는 왜 반대를 안 하시다가 아버님 사후에 왜 소송을 하시게 된 건가요?’

여쭤봤더니 이분 말씀이 ‘아무래도 언니가 아니면 아버지를 모실 사람도 없고, 그래서 일단은 언니가 모셔야 할 상황이라 그때는 뭐.’ 그렇게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소송해서 불행한 것일까요? 본인의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요?

불행의 씨앗, 남과의 비교

물론 객관적으로 여건이 정말 불행할 수밖에 없는 분들 그런 상황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논외로 합시다. 제가 말씀드린 두 가지 상담 사례처럼 불행은 대개 남들과 비교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남들과 나와의 비교가 일종의 불행의 씨앗이 되는 거죠.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남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왔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았으니까 남들과의 비교는 어쩌면 당연하게 우리 DNA 속에 각인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본인이 생각하는 남들과의 경쟁의 99% 실제는 사실 본인 자신과의 경쟁이고 싸움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를테면 본인의 게으름과 본인의 부지런함의 경쟁, 본인의 나태함과 본인의 성실함과의 경쟁, 본인의 무능력함과 본인의 능력과의 경쟁이 있죠. 진정한 행복은 나와의 경쟁과 싸움에서 이기고 획득하는 것이지 남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최근 인터넷, SNS 등이 발달할수록 나와 남과의 비교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가 들여다보게 되는 연예인 분들의 삶, 성공한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죠. 인터넷,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서 남들과의 다양한 비교가 더욱 심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골프 치면 나도 골프를 쳐야 하고, 남들이 와인 마시면 나도 와인을 마셔야 하고, 남들이 외제 차 타니 나도 외제 차 타야 하고, 남들이 호텔가서 자게 되면 나도 호텔에 가야 하고, 남들이 해외 가면 나도 가야 합니다.

이게 안 되니까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납니다. 남들과의 비교 대상인 내가 아니라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 거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서 불행해하고 또 현재와 미래를 비교해서 불행해하지 말고 지금 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법정 스님 말씀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죠.

불행에는 필요 불행과 불필요 불행이 있습니다. 필요 불행은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행입니다. 불필요 불행은 본인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불행입니다.

불행을 극복하는 한의학적인 방법

한의학의 체질론으로 보면 대개 태음인이 불행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잘되는 걸 보면 심장도 벌렁거리고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밤에 잠도 안 오게 됩니다. 비교하지 말고 각각 그 자리에서 타고난 도리를 하면 됩니다. 소나무는 소나무처럼, 잣나무는 잣나무처럼, 참나무는 참나무처럼.

불행할 때는 연자육 차가 참 좋습니다. 연자육을 살짝 데쳐서 다시 말린 후에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보관하면 됩니다. 차처럼 우리거나 1시간 푹 달여서 마시면 도움이 정말 많이 됩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을 사시는 것이 불필요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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