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인한 만성기침, 내 삶을 결정하는 능력

항암치료 없이 한약으로 체력 유지만 했던 폐암 환자

의사의 스승은 결국 환자인 것 같습니다. 저도 결국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되돌아보게 됩니다.

폐암으로 인한 만성기침으로 내원한 70대 환자

몇 년 전, 기침으로 내원한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두 달 전에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난 후부터 감기는 좋아졌지만 기침이 낫지 않으셨답니다.

가까운 내과에서 약 복용을 반복하다가 아무래도 한약을 한 제 지어 먹어야겠다 생각하시고 저희 한의원에 내원하셨습니다.

진맥을 해보니 폐의 본맥이 잘 잡히지 않고, 암을 의미하는 활맥 등이 많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내과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해보셨냐고 여쭈어봤습니다.

그랬더니 1년 전에 찍었을 때 특별한 이상이 없고, 최근에 내과에서 다시 찍자고 하셨는데 본인이 거부하고 안 찍으셨다고 합니다.

혹시 최근에 체중이 많이 줄지 않으셨느냐고 여쭈어봤더니 감기와 기침이 두 달간 반복되다 보니 입맛이 없어서 잘 먹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기침을 계속 하니 사례 걸린 듯해서 더 못 먹은 것 같다, 체중계로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2~3킬로그램 정도 조금 빠진 것 같다, 바지가 약간 헐렁한 것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내과에서 폐 검사를 다시 하시고 이상이 없으시면 그때 다시 내원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약을 지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분이 일단 오늘은 멀리서 왔으니 약을 먼저 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폐 기운을 돋워주면서 기침이 잦아드는 데 효과적인 처방을 보름 분만 짧게 지어드렸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았지만, 항암치료 거부하고 다시 내원해

보름 후, 그분이 다시 오셨는데 내과, 영상의학과에서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다시 큰 병원에 가셔서 정밀검사, 조직검사를 받으시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셔야 되지 않겠냐고 여쭈어봤습니다.

그런데 본인 경험상 친구들 중에 큰 병원에서 폐암 진단 받고, 치료하겠다고 입원하셨다가 집으로 온전히 돌아오신 경우가 별로 없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더 살겠다고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고생하다가 죽느니, 집에서 편안하게 가족들과 있다가 때가 되면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대학병원 치료를 받다 보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인 경우도 많답니다. 어느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부질없는 생명 연장을 위해 생고생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암 전문 한방병원을 소개해드릴까요, 여쭈었더니 그것도 싫다고 하셨습니다. 약이나 한 제 더, 보름 분 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정도 체력은 유지해야 하니 한약도 독하지 않게, 가볍게 지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이분은 그날 이후, 석 달에 한 번씩 내원하셔서 한 달분 한약을 그때그때 지어드렸습니다. 아무래도 폐암으로 인한 기침이라 기침은 잘 잦아들지 않았지만, 체력은 유지된다면서 틈틈이 한약을 복용하셨습니다.

그렇게 2년을 더 다니셨는데, 어느 날 더 이상 내원은 힘들다고 전화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초연하게 생을 마감한 환자를 보며 느낀 점

사실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이분처럼 초연하게 본인 생을 스스로 결정하시는 분들도 간혹 만납니다.

사실 암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대표적으로 대중공포심리가 발동하기 쉬운 기전이죠. 그런데 생명 연장에 연연하기보다 본인 삶의 질에 방점을 두시고 단호하게 대처하기는 사실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능력, 이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기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쉽지 않은 길입니다. 의사의 스승은 결국 환자인 것 같습니다. 저도 결국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되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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